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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금실무노트

기부가 만든 다음 세대의 변화 - 문형배 헌법재판관님의 삶을 보며

by happy moment 2025. 5. 3.

 

 

들어가며

 

5월이 되었지만, 여전히 우리 정치는 혼란스럽고 불안한 상황입니다. 연휴를 맞아 분주했던 지난 시기를 돌아보며, 저는 문득 작년 12월 3일의 비상계엄령 선포부터 4월 4일 헌법재판소의 탄핵 선고에 이르기까지 그 긴박한 과정의 끝자락에서 최종 주문을 낭독한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헌재의 결정이 있던 날 이후, 그 분의 삶과 가치관이 다시 주목받기도 하였는데요. 그 분에 대해 더 알고 싶어 자료를 찾아보던 중, 문형배 재판관에게 장학금을 전달했던 김장하 선생님의 나눔이야기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모금 실무자로서 제가 해오던 작은 일들이 결코 작지 않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나눔은 한 사람의 삶을 바꾸고, 그 소중한 기회를 받은 사람은 다시 사회를 바꾸는 일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 그 당연한 진리를  다시금 마음 깊이 되새기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2025년 4월 18일, 문형배 헌법재판소장의 퇴임을 살펴보며 다시 회자된 그 분의 성장 여정을 통해, ‘세상을 향한 나눔’이 어떻게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고, 그 변화가 어떤 사회적 선순환을 만들어내는지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다음 세대를 위한 변화의 행보: 김장하 선생님과 문형배 헌법재판관님 

 

2019년 4월 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 당시 헌법재판 권한대행 자였던 문 대행의 재산이 공개된 바 있습니다. 당시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헌법재판관들 재산이 평균 20억 원쯤 되는데 후보자 재산은 6억 7545만 원이다. 헌법재판관이 되면 가장 적은 재산을 가진 헌법재판관이 되실 텐데 27년간 법관을 했는데, 너무 과소한 거 아니냐. 뭐 특별한 이유라도 있으시냐"라고 질의를 하였는데  이에 문 대행은 "제가 결혼할 때 다짐한 게 있다. 평균인의 삶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되겠다고 생각했다"라며 "최근 통계를 봤는데 (우리나라) 가구당 평균 재산이 한 3억 원 남짓 되는 걸로 알고 있다. 제 재산은 한 4억 조금 못 된다"고 답했다. 백 의원이 "신고하신 6억7000만 원이 아니고요?"라고 하자, 문 대행은 "그건 아버님 재산이 (포함된 것이)고요. 제 재산은 4억 원이 안 된다. 평균 재산을 좀 넘어선 거 같아서 제가 좀 반성하고 있다"고 발언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청문회장에서는 웃음이 퍼졌고, 백 의원 역시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청문회를 하는 저희가 오히려 죄송한 느낌"이라고 말하였습니다. 또 당시 문 대행은 전관예우 근절을 위해 헌법재판관 퇴임 후에 "영리목적의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하였습니다. 이후 우리의 기억에는 사라져버렸지만, 이 분은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사셨고,  2024년 헌법재판소의 탄핵 판결을 통해 우리 사회는 그와 다시 만났습니다.

나의 작은 나눔이 한 사람의 미래를 바꿀 수 있습니다.

 
 
판결 이후, 주문을 낭독한 문형배 대법관에 대한 삶이 다시 조명되었는데 이 분은 중학교 졸업사진에서조차 자신의 교복이 아닌 다른 사람(친척)의 교복과 교과서를 물려받으면서도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았으며, 아버지가 지주로부터 당하는 어려움을 지켜보며 약자의 편에 서며 계속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셨다고 합니다. 고교 시절 김장하 선생의 장학금을 받으며 학업을 이어갔고,  대학 4년도 그 분의 장학금을 지원받아 공부를 하였다고 합니다. 그가 김 선생님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러 갔을 때, “나에게 고마워할 필요는 없다. 갚으려거든 사회에 갚으라”는 말을 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대학 재학 중 스물 한살의 나이로 사법고시에 합격하며, 27년 동안 법관의 길을 걸으며, 선생님의 가르침대로 초심의 마음으로 사셨던 것 같습니다. 판사로서는 지역판사로서의 재직하시면서 돈과 출세로 결핍을 채우지 않고, 타인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공감하고 위로하는 길을 사셨습니다. (참고로 김장하 선생님은 한약방을 운영하며 모은 재산을 지역 사회와 후학들을 위해 아낌없이 나누어 온 분으로, 그는 장학사업을 통해 수많은 이들에게 희망의 씨앗이 되어주셨습니다. 김장하 선생님은 1984년 가산을 털어 진주 명신고를 설립하고, 7년 뒤 국가에 기증했습니다. 또한,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제공하며 약 1,000명이 넘는 이들을 지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똥은 쌓아두면 구린내가 나지만 흩뿌리면 거름이 돼 꽃도 피우고 열매도 맺는다”고 말하며, 자신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삶을 실천하셨습니다.).

만약 김장하 선생님의 장학금이 없었다면 오늘의 문형배 대법관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문형배 대법관이 없었다면, 우리 사회는 이번 헌정 위기를 다른 방식으로 맞이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두 사람의 삶을 통해 다시 한 번 나눔의 가치를 생각해보게 됩니다.
 

마치면서

 

이처럼 한 사람의 선한 영향력은 또 다른 사람의 삶을 변화시키고, 그 변화는 사회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칩니다. 김장하 선생님의 조용한 나눔과 문형배 재판관의 진심 어린 실천은 우리 모두에게 깊은 울림을 전하며. 기부는 단지 경제적 지원을 넘어 누군가에 희망을 전하며, 가능성을 꽃피우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어가는 가장 인간적인 행동임을 다시금 느끼게 됩니다. 지금 우리가 노력하는 작은 나눔 하나가, 우리와 다음 세대를 위한 또 다른 내일을 만들 수 있음을 잊지 않아야겠습니다. 그리고 그 나눔의 여정을 가장 잘 설명하고, 설득하고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주는 이는 바로 모금실무자이기에 오늘 우리는 다시금 내가 하는 일의 소중한 가치를 깨달으며, 저 역시도 주어진 위치에서 묵묵히 일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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