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모금은 단순히 ‘기부를 요청하는 일’이 아닙니다. 기부자를 잘 이해하고, 그들이 어떤 가치에 공감하는지를 파악하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특히 거액 기부나 장기적 파트너십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기부자에 대한 정교한 분석과 설계가 필요한데, 이것이 바로 ‘기부자 프로파일링(Profiling)’입니다. 오늘은 제가 실무에서 자주 활용하는 프로파일링 구조를 소개하고, 단계별로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를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기부자 프로파일링
기부자 프로파일링은 기부자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평가하여, 해당 기부자가 우리 기관과 얼마나 잘 맞는지, 그리고 실제 기부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는지를 파악하는 과정을 말합니다. 특히 고액 기부자를 대상으로 한 모금 전략에서는 프로파일링이 더욱 중요하며, 전체 모금 성과를 높이는 데 필수적인 기초자료로 활용됩니다. 이러한 프로파일링을 위해서는 먼저 우리 기관에 지속적으로 기부해온 기존 기부자 리스트와 함께, 앞으로 기부가 예상되는 잠재 기부자 명단을 확보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이 잠재 기부자 명단은 기관의 임원이나 이사회 구성원, 또는 기존 기부자들의 추천을 통해 수집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명단이 준비되면, 엑셀 등의 스프레드시트를 활용해 체계적으로 프로파일링 파일을 구성합니다. 기본 정보로는 이름, 소속, 직위, 추천인과의 관계 등을 포함하며, 공개된 인터넷 자료나 유료 리포트 등을 통해 학력, 경력, 타 기관에 대한 기부 이력, 가족 관계 등 다양한 정보를 수집합니다. 이렇게 수집된 정보는 기초적인 프로파일링 단계로 분류됩니다. 그 다음 단계에서는 내부 논의를 통해 해당 잠재기부자와의 감정적 연결 가능성, 그리고 우리 기관의 비전과 기부자의 철학 간의 적합성을 검토합니다. 고액 기부의 경우, 단순한 요청이 아니라 철학적 공감이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에, 이 과정은 매우 중요합니다. 또한 최근 기사나 뉴스 스크랩 등을 통해 기부자에 대한 사회적 이미지나 활동을 확인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이후 내부 회의나 전략 회의를 통해, 누구를 우선적으로 접촉할지, 어떤 방식으로 접근할지를 정하게 됩니다. 기존 기부자라면 면담 요청이 비교적 수월하겠지만, 잠재 기부자의 경우에는 반드시 적절한 중개자, 즉 해당 기부자와 신뢰 기반의 유대감이 있는 사람을 통해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이렇게 설정된 대상에게는 약 3~5개월에 걸쳐 전화, 이메일, 대면 방문, 초청 행사 등의 다양한 접점을 제공하며 자연스럽게 기관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궁극적으로 기부 행동으로 연결되도록 유도합니다.
기부자 프로파일링은 단순한 정보 수집을 넘어, 한 사람의 삶과 가치, 그리고 우리 기관과의 연결 가능성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 과정입니다. 단편적인 기부 가능성만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기부자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어떤 철학을 갖고 있는지를 이해하려는 태도에서 출발합니다. 특히 고액기부를 설계하고 이끌어가는 과정에서는 기부자의 동기를 공감하고, 진심을 바탕으로 한 신뢰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이 핵심이 됩니다. 무엇보다도, 프로파일링은 한 번에 끝나는 작업이 아닙니다. 대상자와의 모든 접촉 기록과 반응은 꼼꼼히 파일에 저장하고, 내부 인사 이동 시에도 이력이 공유될 수 있도록 관리해야 합니다. 이는 기부자와의 신뢰를 유지하고, 관계의 단절을 방지하기 위한 매우 중요한 실무적 전략입니다.
마치면서
실제 실무 현장에서 우리는 종종 기부자를 ‘숫자’로만 바라보는 실수를 하곤 합니다. 그러나 프로파일링의 목적은 숫자가 아니라, ‘관계’를 설계하는 일입니다. 잠재기부자의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그분이 어떤 순간에 마음이 움직이고,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며, 어떤 방식으로 사회와 연결되기를 원하는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맞춤형 기부 제안으로 이어지고, 궁극적으로는 지속 가능한 기부 관계로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이 됩니다. 또한 이 프로파일링 문서는 단순한 보고서가 아니라, 모금기관 전체의 기억을 담는 기록이기도 합니다. 한 번의 면담, 한 통의 전화, 한 줄의 메일도 모두 관계를 잇는 작은 다리이자, 그 다리가 끊어지지 않도록 이어주는 지도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조직이 바뀌고, 담당자가 바뀌어도 기부자에 대한 이해와 존중은 이어져야 하며, 그 연결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이 전문 모금가의 책임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 어딘가에는 자신의 자원을 통해 선한 영향력을 나누고 싶어 하는 누군가가 존재합니다. 그 마음을 알아보고, 연결하고, 공감하며 함께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돕는 일. 그것이 바로 프로파일링이 지닌 진짜 가치이고, 모금 실무자가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모금 설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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